진보네트워크 Revolu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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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온라인 공동체 형성’이라는 사업기조의 설정에 따라, 2004년 진보네트워크센터 기술국은 ‘진보네트워크 Revolutions’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각 단체 홈페이지에서 활용할 수 있는 ‘통합 CGI 솔루션'(회원 인증 및 관리, 게시판, 달력 등 홈페이지에서 활용되는 기능을 통합한 도구), 블로그, 뉴스 도구의 개발, 검색어 방식의 검색을 위한 인덱싱 기능 등을 개발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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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커뮤니티의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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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을 맞으면서 지난 5년간의 활동에 대한 평가가 수행되었다. 그리고 5년 동안의 성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지난 5년 동안 ‘사회운동의 독립 네트워크’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구축하였다. 점차 독자 서버를 운영하는 사회운동 내의 단위가 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단체의 기술적 역량이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며, 또한 독자 서버를 운영할 수 없는 단체 역시 존재한다는 점에서 독립 네트워크로서 진보네트워크의 역할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또한, 단순한 기술적 서비스의 제공에 그치지 않고, 게시판 운영원칙, 홈페이지 카피레프트, 스트리밍 서비스 포맷에 대한 원칙 등 기술정치적 방향을 제시해왔으며, 향후에도 이러한 활동은 확대될 필요가 있다.둘째, 정보인권운동 단체로서의 사회적 위상을 확보했다. 다만, 정보운동의 사회적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며, 정보운동 담론의 확산 및 활동가 재생산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셋째, 사이버 공간을 통한 민중 투쟁의 지원 단위로서의 인식을 확보했다. 이는 참세상방송국 활동을 통해 ‘민중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 것에 크게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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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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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네트워크센터는 1998년 추진위원회 당시부터 회원 소식지를 발간해왔다. 그리고 정책실이 신설된 2000년 6월, ‘네트워커(NETWORKER)’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회원 소식지를 재발간하였다. 회원 소식지 ‘네트워커’는 2002년 12월까지 총 22호 발간되었다.그러나 정보통신 의제를 대중적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비단 회원 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정보통신 정책 잡지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 정보화와 관련된 전문 잡지들이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 컴퓨터, 프로그램, 정보통신 기술, 정보산업 등 기술적,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들이었으며, 정보화의 문화적, 정치적 이슈를 중심으로 다루는 잡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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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네트워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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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네트워크의 운영은 사회운동 내에서 독자적인 물리적 기반, 즉 독립네트워크 구축의 의미를 잘 보여주었다. 일차적인 중요성은 역시 정부나 기업의 검열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서비스를 개시한 후 줄곧 진보네트워크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이용자의 개인정보 제공을 요구받아 왔다. 수사기관이 혐의사항도 없이 아이디에 ‘marx’나 ‘좌파’를 포함하고 있는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일괄적으로 달라고 요구했던 적도 있었다. 또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 검열기구는 진보네트워크 내 게시물의 삭제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진보네트워크는 이런 요구들에 응하지 않았다. 진보네트워크가 이런 감시와 검열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운동의 힘으로 설립하고 운영해온 독립네트워크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요구가 강제적인 법적 요구도 아니고 위법 혐의가 충분히 입증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규제 전통이 강한 국내 시장 환경에서 상업통신망은 이런 요구들을 거절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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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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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진보네트워크센터는 국제연대를 위한 영문 뉴스 데이터베이스인 BASE21(http://base21.jinbo.net) 사이트를 구축하였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인권운동사랑방,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성공회대 NGO정보센터,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 등 8개 단체들과 함께 국제연대 세미나팀을 운영하였으며, 각 단체에서 생산된 영문 뉴스들을 데이터베이스화 하였다.자체 영문 뉴스를 생산하기 위한 자원활동가도 모집하였으며, 10여개의 국제적인 미디어 관련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홍보하였다. 또한 참세상방송국에서 제작한 동영상 및 사진 자료를 활용하여 국제적으로 유통시켰다. 부시방한 반대, 2002년 여중생 사망사건, 노동자들의 투쟁, 검열반대 투쟁 등 주요 이슈에 대한 기획페이지를 마련하여 특정 사안에 대해 해외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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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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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확산에 따라 초국적 자본의 유입이 증가하고 WTO 등 국제 기구의 결정이 각국 정책을 강제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일국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과제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운동에서의 국제연대 필요성 또한 커졌다. 1996~97년 노동자 총파업이나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운동은 국내에서도 적극적인 국제연대 운동의 필요성을 환기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진보네트워크센터는 설립 목적에서 “새로운 사회적 연대전선을 구축하여 진보운동의 개별화를 극복하고 진보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도모하기 위하여 사회운동과 사회운동, 사회운동과 대중, 개인과 개인 그리고 국내운동과 타국의 운동을 이어주는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사회운동의 새로운 전진과 연대운동의 성장발전에 기여 하고자 한다”고 하여 국제연대를 지원하기 위한 역할을 자임했다.진보네트워크센터의 국제연대 활동은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뉠 수 있다. 사회운동의 국제연대 지원 및 정보통신운동의 국제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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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S와 정보인권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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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은 기존에 각 학교별로 관리되던 학생 정보를 각 시도단위로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관리하도록 한 통합정보시스템이다. NEIS에 입력되는 정보는 학교의 모든 행정 정보, 학생 정보를 포함하여 27개 영역, 6,000여개 항목에 달했다. 교육부의 NEIS 구축 계획에 대해, 교육현장의 한 당사자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는 국민의 자기정보통제권 침해, 정보의 집적‧통합을 통한 국가통제의 위험성, 교육의 자율성 침해 등 많은 비판을 제기하였다.네이스 반대 인권활동가 단식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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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정보운동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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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정보통신 이슈에 관심있는 제반 단체간 소통과 연대를 강화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정보통신운동 초창기인만큼 서로의 현황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교육하고, 공동의 사업을 모색해보자는 의미에서였다. 서울과 지역 단체간의 교류를 활성화하자는 의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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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통신사업법 53조에 대한 위헌 결정

By type, 행정심의

정부의 자의적인 검열은 PC통신에 이어 인터넷으로 확장되었다. 2000년 5월 경,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사회단체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와있는 ‘백두청년회’ 명의의 게시물에 대해 삭제 요구를 해왔다. 2001년 6월 7일에는 미술교사인 김인규 교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누드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홈페이지 내용의 일부 삭제 요구를 했다. 또한, 2001년 6월 8일에는 자퇴생들의 온라인 모임인 ‘아이노스쿨(www.inoschool.net)’에 대해 강제폐쇄 조치를 내렸다. 2002년 5월 27일에는 군대반대운동 홈페이지(http://www.non-serviam.org)에대해 이용정지 2개월의 시정요구를 통보해왔다. 이와 같은 정부의 검열은 전기통신사업법 53조에 근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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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질서확립법 반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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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부는 2000년 7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의 제정을 통하여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시행하는 ‘인터넷내용등급제’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정통부의 인터넷내용등급제는 영화나 서적에 등급표시를 하는 것과 같이 컨텐츠의 내용에 따라 홈페이지에 등급을 매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나 서적의 경우는 소수의 생산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 반면, 인터넷내용등급제는 전체 인터넷 홈페이지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국민의 표현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해외의 내용등급제는 민간자율적으로 시행되는 것인 반면, 정통부의 내용등급제는 무엇이 등급 대상이고 아닌지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결정하고 그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도록 함으로써 강제성을 띈 정부의 검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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