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프트웨어 특허의 일종인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특허가 사회적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즈니스 모델 특허의 출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으나, 특허청에서는 단지 기업의 이해만을 대변하고 있을 뿐, 인터넷의 생명인 자유로움을 억압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리차드 스톨만도 소프트웨어 특허를 미래의 큰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아마존의 원클릭 특허에 맞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에 소프트웨어 특허의 문제점에 대한 그의 입장을 들어보는 것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에 출범한 전자 프런티어 재단은 그동안 사이버 공간 및 정보화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도청, 감시 카메라, 및 전자주민카드 문제 등 시민의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들을 쟁점화 하는 활동에서 시작하여, 표현의 자유 문제, 프라이버시, 정보 공유 등 다양한 부분에서 실질적인 성과들을 만들어 왔습니다.특히 1996년 만들어진 사이버 스페이스 독립선언문(A Declaration of the Independence of Cyberspace)는 전세계적으로 네티즌들은 기본적인 인권보호를 위한 최초의 선언문입니다.
2000년 3월 4일,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삼성전자의 특허 ‘인터넷상에서의 원격 교육방법 및 장치’에 대해서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하였습니다. 삼성전자의 위 특허를 비롯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특허의 요건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허되었을 경우 과도한 독점권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인터넷의 자유로운 발전을 억압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 인터넷 관련사업이 크게 늘면서 상업적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스팸메일 발송 등에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수집되고 활용되는 개인 정보의 당사자인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권 보호는 지극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나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 이용자가 2000년 4월 11일, 거대 닷컴사들을 상대로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주목받고 있습니다.
2000년, 정보통신부는 인터넷내용등급제 도입을 주 내용으로 하는 ‘개인정보보호 및 건전한 정보통신질서 확립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시도하였습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법률을 ‘통신질서확립법’으로 규정하고, 사실상의 인터넷 검열제도인 인터넷내용등급제 도입 반대를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통신연대(정보민주화와 진보적 통신을 위한 연대모임)는 정보통신 이슈에 관심있는 단체 및 통신 동호회들의 네트워크로서 1995년 결성되었습니다. 통신연대는 1990년대 통합전자주민카드 반대운동, 통신검열 반대운동 등을 이끌었습니다. 통신연대 내의 1996년과 1997년 정보통신검열백서를 발간하였으며, 1998년에는 사이버권리백서를 발간하였습니다.
2001년 7월 1일 시행될 ‘통신질서확립법(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과 강제적 인터넷내용등급제에 항의하기 위한 일환으로 2001년 6월 29일부터 7월 2일까지 사이트 파업과 온라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믿는 인터넷 언론사들이 있었습니다. 선거운동기간 중 실명을 밝힌 사람에게만 글을 쓸수 있도록 허가하는 인터넷 실명제는 국가에 의한 검열이라는 것입니다. 소수의견이기 때문에, 편견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개인정보 침해의 우려 때문에 의견 밝히기를 꺼리는 사람들에 차별이라는 것입니다.
(2008년 10월 28일 오후 5시, 진보네트워크센터 회의실에서는 진보네트워크센터의 과제와 전망을 논의하는 좌담이 개최되었다. 이 좌담에는 이종회 대표, 김명준, 이성우 운영위원, 홍석만 민중언론 참세상 사무처장, 오병일, 김승욱 활동가가 참석하였다. 아래 내용은 이 날 좌담을 정리한 것이다.)1998년 11월 14일 창립된 이후,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활동은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이러한 변화는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이로 인한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에 어떻게 조응할 것인가라는 고민 속에서 이루어졌다.텍스트 기반 BBS를 중심으로 했던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서비스는 2000년을 경과하면서 웹 기반 커뮤니티로 변화하였으며, 주된 소통 시스템도 게시판에서 블로그로, 단체에서 활동가 개인으로 변화하였다. 검색과 콘텐츠 중심의 사회운동 포털을 기획하기도 했으나, 주류 포털의 모델은 진보네트워크센터의 (비영리 단체로서의) 사업 모델과 양립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였다.
진보네트워크센터 발족식 및 창립총회는 1998년 11월 14일, 서울대 연건캠퍼스 보건대학원 1층에서 개최되었다. 김진균(서울대) 교수가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이사회는 강정구(동국대 사회학 교수, 학술단체협의회), 김형준(참세상 전 운영자),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오세철(연세대 경영학 교수, 지식인연대), 유초하(충북대 철학 교수,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윤종현(변호사), 이갑용(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장창원(목사), 홍근수(목사, 향린교회)로 구성되었다. 조광희 변호사가 업무감사, 강영근 회계사가 회계감사를 맡았다. 1998년 12월 10일, 제1차 이사회에서 운영위원으로 강내희(중앙대 영문과 교수, 민교협), 강동진(민중의료연합), 김도형(변호사), 김명준(노동자뉴스제작단), 박석운(노동정책연구소), 백찬홍(기독교사회선교협의회), 이용근(노동네트워크), 이종회(지식인연대), 이철순(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장도리(학생네트워크), 정원오(학술단체협의회), 최경송(청년생태주의자KEY), 최인기(전빈련)를 선임하였다. 이종회 운영위원이 진보네트워크센터 소장을 겸임하였다.